그동안 발레는 우리에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같은 존재였다. 단 한 줄의 대사도 없이, 해설도 없이 몸짓과 음악으로만 이루어지는 발레 공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이런 부담감으로 몇 번 만나보지도 않고, 발레라면 슬금슬금 피하며 낮가림을 하는 우리를 향해 ‘문훈숙의 이야기발레’가 찾아왔다. 그것도 다양한 공연 작품들과 작품에 곁들이는 문훈숙 단장의 친절한 설명, 그리고 유니버설 발레단의 공연까지. 우리를 위한 선물을 양 손 가득 준비해서 말이다.
<은은하게, 반짝반짝 빛을 내는 ‘백조의 호수 Swan Lake’>
‘문훈숙의 이야기발레’가 우리에게 가장 먼저 풀어놓은 선물보따리는 ‘백조의 호수’이다. 마치 은은하면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실을 뽑아내는 것 같은 선율과 백조보다 더 우아한 몸짓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특히 호숫가 장면에서 볼 수 있는 오데트 공주와 지그프리드 왕자의 사랑의 2인무와 백조 군무는 백조보다 더 우아하고 부드러운 발레리나의 몸짓으로, 얼어있던 관객의 마음을 덩달아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이렇게 부드러워진 관객들의 마음은 무도회 장면으로 넘어가자 이내 흥에 겨워진다. 무도회 장면은 지그프리드 왕자의 약혼을 축하하는 무도회답게, 세계 각국의 춤들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스페인의 정열이 느껴지는 스페인 춤, 어느덧 탬버린에 손가락을 까딱거리게 되는 흥겨운 나폴리 춤, 네 커플의 아름다운 마주르카 춤이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마지막으로 ‘백조의 호수’의 명장면으로 뽑히는 왕자의 흑조의 2인무는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특히 흑조 오딜의 32회전 연속회전을 보고 있노라면, 입에선 환성이 절로 나오고, 손으로는 박수가 절로 쳐질 정도이다.
<네 명의 여인의 매력에 빠져드는 ‘프레스코 Frescoes’>
프레스코는 벽화속의 아름다운 여자들이 현실세계로 나오기를 바라는 남자의 소망을 담은 작품으로, 백조의 호수보다 30년 전 앞서 쓰여졌다. 우아하게, 발랄하게, 부드럽게, 상냥하게 춤추는 벽화속의 네 명의 여인의 매력에 푹 빠져들다 보면, 어느덧 이 여인들이 현실세계로 나오길 바랬던 남자의 마음에 100% 공감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낭만적인 분위기에 흠뻑 취하게 되는 ‘지젤 Giselle’>
이 작품의 제목인 지젤은 사랑 때문에 깊은 상처를 입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주인공의 이름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밤이 되면 무덤에서 나와 숲을 찾아오는 남자들을 숨이 끊길 때까지 춤을 추게 하는 요정이 된 지젤. 그렇지만 자신이 사랑했었고, 죽어서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알브레히트가 다른 요정들의 포로가 되자 그를 지켜주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런 그녀의 노력으로 가까스로 새벽의 종소리가 울려 요정들은 물러가고 알브레히트는 구원을 받고, 지젤은 안식처로 돌아감으로써 이 작품은 끝이 난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런 작품의 내용 중 그를 지켜주기 위해 지젤이 노력하는 장면과 그녀로 인해 구원받은 알브레히트와 지젤의 2인무를 볼 수 있었다. 보면 볼수록, 실크 옷자락이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듯이 하늘거리는 지젤의 손짓과 몸짓은 낭만적인 분위기에 흠뻑 취하게 한다.
<사랑스러운, ‘요정인형 Fairy Doll’>
요정인형에게 사랑받기 위한 광대 2명의 몸짓이, 꼬맹이의 애교처럼 참으로 사랑스럽다. 그런가하면 2명의 광대 틈 사이에서 새초롬한 요정인형의 몸짓은 7살의 여자아이처럼 앙증맞다. 이런 아기자기한 공연에 꼬마 관람객들은 눈을 떼지 못했고, 다른 관람객들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파리의 불꽃 Flame of Paris’>
공연의 마지막 순서인 ‘파리의 불꽃’은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다이내믹한 회전과 경쾌한 점프 등 화려한 테크닉을 마음껏 보여준 작품이다. 화려한 테크닉을 자랑하는 작품인 만큼,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새털처럼 가벼운 몸짓과 속도감 있는 움직임이 돋보였다.
‘파리의 불꽃 Flame of Paris’을 마지막으로, ‘문훈숙의 이야기발레’가 준비해온 선물을 다 풀어 보았다. 선물들을 하나하나 다 풀어보는 사이, 어느덧 발레는 ‘가까워지고 싶은 당신’같이 매력적인 존재가 되었다. 작품과 발레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직접 시범까지 보이던 문훈숙 단장의 배려에 발레에 대한 부담감도 사라졌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어느덧, 발레리나의 몸짓처럼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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