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제목 | [정보]창투사들 '검증된' 벤처만 안전빵 투자…아이디어 얘기하면 "담보부터 먼저…" | 글쓴이 | 왕무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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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13.04.30 | 조회수 | 8573 |
대표이사 연대 보증까지 요구하기도
리스크 큰 새내기 투자 비중 30% 미만
"수익 못내면 정부지원 끊겨" 하소연도
#1. 바이오 벤처기업 사장인 A씨는 얼마 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 설비 확충 자금이 필요했던 그는 벤처캐피털 몇 곳을 찾았다. 하지만 벤처캐피털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사업모델은 좋은데, 실패할 경우 원금 회수를 보장받을 방법이 확실치 않다”는 것. 일부는 “담보와 보증을 제공하면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제안했다.
#2. 업계 중위권 벤처캐피털 심사역인 B씨. 그는 입사 후 야심차게 추진한 몇 건의 창업 초기 기업 투자가 실패하면서 이젠 상장 직전의 기업들에만 관심이 간다. 경영진도 대박을 터뜨리진 못해도 꾸준히 수익을 내는 그를 신임한다. ‘안 깨지는 창투사’라는 이미지만 잘 관리하면 조만간 다가오는 정부 출자사업에서도 돈을 지원받을 가능성이 높다.
창업벤처 육성의 밑거름이 돼야 할 ‘벤처캐피털’이 투자리스크에 벌벌 떨고 있다. 초기기업(설립 3년 미만)을 발굴하기보다는 기업공개(IPO) 직전의 기업에 투자해 적은 수익을 챙기는 것에 만족하는 모습이다. 한두 차례 수익을 못 내면 출자 대상에서 배제되는 정부의 출자심사 구조가 벤처캐피털의 리스크 회피 현상을 더 가속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초기’보단 ‘후기’ 투자 선호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벤처캐피털의 초기기업 투자는 후기기업(설립 7년 이상) 투자를 압도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2008년 초기기업 투자 규모는 2908억원으로, 후기기업 투자(1786억원)뿐만 아니라 중기기업 투자(설립 4~7년, 2553억원) 규모보다도 컸다.
하지만 이후 벤처투자의 주력은 ‘후기기업 투자’로 바뀌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간 벤처캐피털의 초기기업 투자 비중은 30%를 밑돌았다. 반면 같은 기간 후기기업 투자 비중은 41~45%에 육박했다.
벤처캐피털의 리스크 회피가 심화되면서 ‘투자사’가 아닌 ‘대출사’로 변질되는 경우도 있다. 일부는 펀드가 아닌 자기자본을 통해 투자할 경우 투자금에 대한 담보를 요구한다. 대표이사의 연대보증 문항을 계약서에 넣기도 한다. 벤처기업 관계자는 “벤처캐피털은 리스크를 안고 사는 게 숙명인데, 많은 업체가 안전한 투자에 더 관심을 보인다”며 “벤처캐피털이 벤처투자를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리스크 최소화 RCPS 선호
국내 벤처투자 중 상당 부분은 보통주가 아닌 상환전환우선주(RCPS) 형태로 이뤄진다. RCPS는 투자받은 기업이 IPO를 할 경우 상장 직전 보통주로 전환할 수도 있고, 만약 IPO가 어려워지면 투자원금에 이자를 붙여 상환받을 수도 있는 주식이다. 투자금이 묶이는 것을 막을 수 있어 벤처캐피털들이 선호하는 투자 형태다.
2010년과 2011년 벤처캐피털 투자 중 우선주(대부분 RCPS)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40.1%와 35.2%로 다른 투자 형태에 비해 크게 높았다. 같은 기간 보통주 투자 비중은 각각 19.5%와 27.4% 수준이었다. 지난해에도 우선주 투자 비중은 40%에 육박했다.
문제는 RCPS 투자가 벤처기업에는 큰 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보통주로 투자할 경우 투자받은 기업의 IPO가 어려워지면 벤처캐피털은 컨설팅을 하거나 추가 투자자 유치 등을 통해 기업의 성장을 추구한다. 하지만 RCPS로 투자하면 원금과 이자를 받고 빠져나오는 ‘쉬운 길’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벤처캐피털의 리스크 회피는 투자 본질과는 전혀 관계없는 엉뚱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외국 대학과 KAIST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명문대 출신 경영진을 선호하는 ‘학벌 중시’가 대표적 사례다.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 뒤 적절한 인재를 찾는 게 아니라, 학벌 좋은 멤버를 영입한 다음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게 투자 유치에 더 유리한 방법이 되고 있다.
한 벤처캐피털리스트는 “벤처업계에 명문대를 나온 사람이 성공 확률이 높다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해 있다”며 “명문대를 졸업하지 못한 청년은 창업시장에서마저 소외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패 용납 문화 정부부터 가져야
벤처투자 업계 전문가들은 벤처캐피털이 리스크를 회피하게 된 데는 정부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벤처캐피털이 펀드를 결성하려면 정부에서 출자를 받아야 한다. 한데 여기서 심사 기준이 청산된 펀드의 수익률 위주로 돼 있다 보니 중장기적으로 리스크 높은 투자를 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는 정부도 최근 들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소기업청은 창업 초기 전문펀드를 잇따라 조성하고, 초기 투자펀드 운용사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다양한 혜택을 마련했다. 이 영향으로 지난해부터 다수의 창업 초기 전문투자 벤처캐피털이 설립됐다. 올 1분기(1~3월)에는 벤처캐피털의 초기 투자 비중이 30% 초반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이 꾸준히 이어지기 위해선 벤처캐피털이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추가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한 벤처캐피털 대표는 “벤처캐피털을 평가할 때는 수익률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많은 창업 초기기업을 발굴해 몇 년간 컨설팅을 했고, 이 결과 몇 개의 업체를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시켰는지 등을 판단하는 잣대도 필요하다”며 “정부가 먼저 투자에 실패한 벤처캐피털들을 끌어안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동혁 기자 otto8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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